투자일지, 「기억 vs 기록」 시리즈
그날 기록에 남은 것
AI와 반도체 주식이 급락하고 돈이 미국 국채로 몰리던 날이었습니다. 그날 저녁 나는 만기를 2주 남긴 예치 상품을 일찍 끝내고, 들고 있던 스테이블코인을 전부 ETH 현물로 바꿨습니다.
그 직전, 함께 기록을 쓰던 AI 검토자는 반대했습니다. 10월 28일로 잡아 둔 월간 점검을 건너뛰게 되고, 조기 종료 비용이 생길 수 있고, 만기까지 2주밖에 남지 않았다는 이유였습니다. 나는 이렇게 답했습니다.
“내가 직접 결정한다”
2026-10-15 · 그날의 기록
내가 기억하는 그날
그날 나는 스테이블코인을 들고 있을 때보다 잠을 잘 자고 마음이 편하다고 말했습니다. 저점 근처에서 잘 샀다고도 생각했습니다. 그리고 스스로에게 이 말을 남기고 매일 밤 리마인더에 넣었습니다.
“추가 매수와 손절은 하지 마. 흔들려서 파는 게 제일 큰 손실이야.”
2026-10-15 · 그날의 기록
기록이 보여주는 그날
같은 날 기록에는 그 결정이 부딪힌 규칙도 그대로 적혀 있습니다.
- 헌장의 “한 번에 사지 않는다. 천천히 모은다.”와 맞지 않았습니다.
- 헌장의 “하나의 자산에 미래를 맡기지 않는다.”와도 부딪혔습니다. 나는 ETH가 많은 알트를 품은 나스닥 종합지수 같은 자산이라 단일 자산으로 보기 어렵다며 이의를 달았습니다.
- 실행 규칙서의 “새 조건이 정해지기 전에는 사지 않는다.”도 어겼습니다.
- 사기 전에 기록하고 20분을 기다린다는 규칙을 지킨 증거도 없습니다.
지킨 것도 있습니다. 레버리지와 선물, 숏은 쓰지 않았고 알트 없이 현물만 샀습니다.
이 헌장은 그 뒤 내려놓았습니다. 하지만 10월 15일에는 내가 지키겠다고 적어 둔 문장들이었습니다.
12일 뒤, 반대쪽 버튼
10월 27일 오후, 나는 X에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을 전량 매도했다고 썼습니다. 10월 15일에 산 ETH도 이때 모두 팔았습니다. 이유는 그날 글에 다섯 가지로 적었습니다. 중심은 돈이 AI 산업으로 몰려 코인 시장에 들어올 자금이 남아 있지 않다는 판단이었습니다. 자세한 내용은 비트코인·이더리움을 전량 정리한 이유에 있습니다.
이 매도는 10월 15일처럼 결정 일지로 남기지 않았습니다. 그날의 판단은 X에 쓴 글이 전부입니다. 다음 날 아침에는 이렇게 적었습니다.
“보유하던 코인 다 던지고 오랜만에 깊은 숙면을 취했읍니다”
2026-10-28 · X 게시물
13일 전의 나는 ETH를 들고 있어서 잠을 잘 잔다고 말했습니다. 이번에는 그 ETH를 다 팔고 나서 오랜만에 깊이 잤다고 적었습니다. 두 번 모두 편한 잠이 결정이 옳다는 근거처럼 쓰였습니다.
숫자로 남은 것
매도를 알린 시점의 ETH 시세는 10월 15일 내 평균 체결가보다 3%쯤 낮았습니다. 실제 체결가와는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. ETH는 그 뒤로도 내려가 10월 30일에는 그 체결가보다 8% 넘게 낮은 가격까지 찍었습니다. 저점 근처에서 잘 샀다는 10월 15일의 느낌은 기록으로 확인되지 않았습니다.
AI 검토자의 말대로 만기인 10월 30일까지 기다렸다면, 10월 27일의 나는 아직 ETH를 사기 전이었습니다. 사는 결정도 파는 결정도 10월 28일로 잡아 둔 월간 점검보다 먼저 왔습니다.
내 생각
AI 검토자를 둔 이유는 내 결정을 막기 위해서가 아니었습니다. 내가 검토 순서를 건너뛸 때 그 사실이 기록에 남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. 10월 15일의 기록은 그 역할을 했습니다. 반대 의견, 건너뛴 절차, 부딪힌 문장이 모두 내 결정 옆에 그대로 남았습니다.
12일 뒤의 매도까지 놓고 보면 하나가 더 보입니다. 결정하는 날의 편한 마음은 서로 반대인 두 결정을 똑같이 옳다고 말해 주었습니다. 그 기분은 근거가 아니라 그날의 상태로 적어 둬야 했습니다.
결정은 내가 합니다. 다만 결정이 규칙과 부딪힐 때 그것을 예외라고 부를지 위반이라고 부를지는 결과가 나오기 전에 적어 둬야 합니다. 결과가 나온 뒤에 붙이는 이름은 대부분 변명이 됩니다.
다르게 볼 수 있는 점
- 10월 27일의 매도는 흔들려서 판 것이 아니라, 시장을 보는 판단이 바뀌어서 고친 것일 수 있습니다. 다만 둘을 가르려면 팔기 전에 적어 둔 기록이 있어야 했습니다.
- ETH를 여러 자산의 묶음으로 본 내 해석이 맞다면, 분산 규칙과 정말로 부딪혔다고 보기 어렵다는 반론도 가능합니다.
- 12일은 판단을 채점하기에 너무 짧습니다. 그 사이 가격이 크게 올랐다면 나는 같은 두 결정을 전혀 다르게 기억했을 것입니다. 이 글이 보려는 것은 결과가 아니라 절차입니다.
- 만기까지 기다렸다면 어땠을지는 지나고 나서야 할 수 있는 계산입니다. 10월 15일 저녁에는 아무도 2주 뒤 가격을 몰랐습니다.
이 글은 내 기록과 생각을 정리한 것이며 투자 권유가 아닙니다. 같은 선택을 권하지 않습니다.
이 글을 쓴 시점(2026-11-04 15:55 KST), BTC 약 $77,600, ETH 약 $2,300 (작성 시점 시장가, 반올림)
